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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합·통신 사건 (03-11-26)
민가협11-17 12:54 | HIT : 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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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합·통신 사건"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사건
-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구속기소 사건을 중심으로

<민주가족 33호> 2002년 2월




1.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에 대한 문제제기
국정원은 2001년 10월23일 월간「자주민보」발행인 이창기씨와 기자 2인을 체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1999년 8월 10일 자주민보를 설립한 이후, 해외 친북인사들의 글을 싣기로 방침을 세우고 조총련 구성원인 김명철, 조총련 산하단체 '조청'의 기관지 <세세대> 편집인 김윤순, 재일 한통련 의장 곽동의씨의 글을 게재하기 위해 이들과 수차례에 걸쳐 전화통화, 전자메일을 교환하는 등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도 반국가단체의 구성원과 각 통신·연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죄 적용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첫째, 이들에게 회합·통신혐의를 적용하려면, 위 통신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할 위험성이 있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그러나 공소장에 따르면, 자주민보 측에서 김명철, 김윤순, 곽동의씨와 전화, 전자메일 등을 통해 연락한 것은 글을 청탁하거나 원고를 송신하기 위한 것인 바, 잡지자가 원고청탁을 위해 필자와 통신한 것이 어떻게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 행위인지 알 수 없다. 월간 「자주민보」에 대해 창간호부터 모두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혐의를 적용한 검찰이, 그 원고들을 송수신하기 위해 연락한 것에 대해서 회합통신 혐의를 따로 적용한 것은 자의적이고 과도한 법적용이 아닐 수 없다.
둘째, 검찰이 이들에게 회합통신 혐의를 적용한 근거는 위 필자들이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통화내용과는 관계없이 대상자가 단지 조총련, 한통련계 인사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지 의문이다. 이들 단체가 독재정권 시절 반국가단체로 규정되긴 했지만 국민정부 출범이후 전향적 조치로 조총련계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점 등을 변화된 정세를 감안한다면 지나친 법적용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또한 여러 잡지들에서도 김명철, 곽동의씨와의 인터뷰 기사들을 싣기도 했는데 유독 자주민보에 대해서만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것은 법적용에 형평성을 잃은 처사이다.
이처럼 잡지에 글을 싣기 위해서는 필자들에게 연락하여 원고를 송수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그것이 어떻게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혐의가 되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제8조)죄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 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한 자"를 처벌하게 되어 있다.
이는 행위자가 반국가단체 구성원 등과 회합, 연락 또는 기타의 방법에 의한 연락행위를 함으로써 곧 범죄는 완성되는 것이며, 그밖에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되는 결과 발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위의 대상자가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면, 단순한 회합·통신, 기타의 연락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든지 이 법에 의한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연락(만남) 자체를 문제삼아 별도로 처벌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적 자유권인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따라서 만일 회합·통신이 다른 죄의 의도가 있어 실제의 범죄에 달하였다면 예비, 음모, 공모 등으로써 그에 따른 법조항에 의율,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특히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한의 민간교류가 활발해지고 북한사람과의 만남 또한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현실과 괴리를 빚을 수 밖에 없으며, 남북교류협력법과도 상충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8조가 과연 법적 구속력을 지닐 수 있는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 보고서에서는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발생한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적용사건을 중심으로 이 조항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2. 김대중 정부하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사건 적용 실태

①똑같은 혐의에 대해 경찰은 남북교류협력법, 검찰은 국가보안법 적용기소
같은 혐의에 대해 경찰은 정부승인 없이 북한 주민과 접촉한데 대해 남북교류협력법을 적용하고 검찰은 보안법을 적용해 기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000년 5월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미군의 학살만행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위한 남, 북, 해외 관련단체 실무회의에 참석했다가 15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이덕준씨를 체포했다. 경찰은 이씨를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 등과 접촉하고자 할 때는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함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측 '전민특위' 대표인 리영일 등 북한 주민과 불법으로 회합'했다며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검찰은 같은 혐의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8조(회합·통신), 7조(찬양·고무) 조항으로 변경해 기소했다. 이는 승인을 받지 않고 불법으로 북한사람을 접촉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접촉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즉, 검찰은 북한사람을 접촉한 것에 대해 '이적성' 여부를 추정한 것인바, 남과 북 해외가 대등한 위치로 실무회담을 개최한 것이 어떻게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회합인지에 대해서 검찰은 납득할 만한 증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씨는 귀국하다가 곧바로 체포되어 실질적인 활동은 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단지 실무회담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이적성' 여부를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씨가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면 남북교류협력법을 적용해도 될 것을 굳이 보안법을 적용해야 하는가. 이는 국가보안법의 편의적 남용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한편 법원은 이씨의 국가보안법상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② '간첩'혐의로 구속했으나 회합통신죄로 기소한 한단석 교수 사건
"북한의 지령을 받고 고정간첩으로 활동해온 혐의로 지방 국립대 철학과 명예교수 한아무개 씨를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언론에 발표된 현직 교수가 검찰 기소과정에서 간첩 혐의는 삭제되고 국가보안법 상의 회합·통신,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에 발표된 이는 전북대 한단석 교수(당 72세)로, 2000년 1월 25일 경찰청 홍제동 분실 수사관들에게 간첩혐의로 체포되었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북한 대남공작지도원 최동옥을 만나 주체사상 등에 관한 책자를 전달받는 등의 교류를 하다가(회합·통신) 그에게 포섭되어 한국내의 제반 정세를 파악하여 알려달라는 등의 지령을 받고 그 목적수행을 위해 잠입·탈출하고, 국내정세 등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하여 위 최동옥에게 전달하고(국가기밀누설), 최동옥이 제공하는 공작금 일화 20만엔을 수수하는(금품수수) 등 재일 북한 대남공작지도부에서 하달된 공작 지령문건에 따라 암약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한 교수 체포 이전, 경찰이 간첩혐의로 다른 이(유진식)를 수사하다가 혐의가 확인되지 않자 한 교수를 체포하여 유진식, 최동옥 등의 관계를 추궁하며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잠안재우기, 협박, 철야수사, 변호인 접견방해 등 가혹행위 및 불법수사했다가 실패하자 최동옥과의 일상적인 교제를 확대하여 기소한 것으로 보인다.
한 교수에 대한 검찰의 기소내용은 "최동옥이 조총련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1993년 10월경부터 1997년 6월 25일까지 4차례에 걸쳐 전화통화(통신)하고, 1993년 11월 하순과 1994년 11월 초순 및 1997년 8월 10일에 도일하여 최동옥을 직접 만났다(회합)는 것이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회합통신 사건의 전제가 되는 최동옥씨 신분이 불확실하다며 검찰이 최씨에 관하여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최씨가 대남공작원인지 여부를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설령 검찰의 주장처럼 최씨가 대남공작원이라 할지라도 최씨의 의도와 한교수의 의도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한교수는 군산중학교 시절 음악교사였던 최씨를 71년 일본 동경대 유학시절 만나게 되었고, 최씨로부터 받은 도움을 도의적으로 잊을 수 없어 귀국한 이후에도 서로 연락하고 지냈던 사제지간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씨와 최씨가 회합 통신한 내용을 미뤄보더라도 과연 보안법 적용이 대상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공소 사실에 따르면 두사람의 전화통화 내용은 "11월 초 일본에서 보자", "11월 하순경에 칸트학회 세미나가 있어 그때 가겠다" 등으로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 위태롭게 될 것으로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 직접 만났을 때도 최씨가 "북조선이 남조선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거나, 북에서 발행한 책이나 자료를 한교수에게 건넨 것이 전부이며 검사도 이런 사실 외에 아무런 입증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경찰은 1997년 6월 18일부터 구속하기 전까지 2년6개월 동안 한교수의 전화, 통신 및 우편물을 감청해왔음에도 경찰이 한교수의 간첩혐의에 대해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 것을 보면 경찰의 수사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 알 수 있다. 특히 한교수는 1978년 최씨와 관련되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보안사에 연행되어 13일동안 조사를 받고 그냥 석방된 사실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변호인들은 한 교수가 보안사의 감시를 받을 것이 틀림없는 상황에서도 최씨를 계속 만난 것은 그만큼 떳떳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한 교수는 1심,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③ 북한과 서신왕래한 대학생 구속
경찰은 부경대 학생 김보성, 조해주씨를 북한의 대학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며 회합통신 혐의로 구속했다. 1999년 3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의 함북 청진소재 제2사범대학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북한의 대학에 편지를 쓰기 위해 부경대생들을 대상으로 북한 학생들에 대해 궁금한 점을 설문조사를 통해 정리했으며 그 내용은 교과과정 및 학생회, 동아리 활동 소개 등 주로 대학생활에 대한 질문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의 편지왕래는 남북한 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만일 이들이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에 따라 국가보안법에 우선하여 적용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 할 것이다.

공모공동하여 회합통신했다며 범민족대회남측본부 간부들 구속
서울경찰청 옥인동 보안수사대는 1999년 8월 17일, '10차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의 '민족대단결 통일선봉대' 대장으로 활동한 진관 스님을, 2000년 2월 10일, 대변인으로 활동한 박해전(한겨레신문 교열부 차장)씨를 체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1999년 8월 15일 서울대에서 범민족회의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같은 시간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개최될 예정인 범민련 북측본부 주관의 범민족대회에서 북측본부 관계자들이 낭독할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99범민족회의 공동결정서>, <국가보안법 철폐 결의문> 등을 "범민련 북측본부 관계자 등과 팩스등을 송수신함으로써 반국가단체 구성원인 범민련 북측준비위원장 안경호 등과 통신했다"며 회합·통신죄를 적용한 것이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들은 이들이 직접 행한 것이 아니라 범민족대회장 신창균,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장 김양무씨 등 범민련의 주요간부들과 공모공동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엄격한 증명을 요하는 '공모 여부'에 대해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이들이 범민족대회 추진본부의 '대변인' 또는 '통일선봉대 대장'의 직위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이라는 의심에서 공모를 추정하여 기소한 것으로 보인다. 공소장에도 "범민족대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북측본부 관계자"와 팩스를 주고 받았다고만 포괄적으로 적시되어 있을 뿐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공모했으며, 그 실행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렇듯 명확한 증거제시도 없이 '공모'했다고 단정하여 회합·통신 혐의를 둔 것은 국가보안법을 남용한 처사에 다름 아니다. 1심 재판부는 검사의 공소사실을 모두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했다.

"인터넷 간첩"으로 보도했다가 회합통신 혐의로 기소
제7기 한총련 조통위 정책실장인 이창호(동아대 졸)씨가 1999년 5월 21일 서울경찰청 장안동 분실에 의해 구속되었다. 그런데 장안동 분실은 이 사건에 대해 "인터넷 간첩체포"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냈고, 주요일간지들은 사실 확인 없이 이를 보도했다. 경찰이 이씨의 '간첩' 활동 혐의의 근거로 제시한 내용은 이씨가 전자메일과 공중전화를 이용하여 일본에 있는 범청학련 해외본부 사무국장 조선오와 파일을 주고 받았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이씨를 체포해 잠안재우기, 폭행등 가혹수사를 했지만 '간첩' 혐의는 과장된 것이었음이 드러났고, 이씨는 회합·통신(8조) 혐의로 기소되었다. 조씨가 "재일조선인총연맹(조총련)의 중앙선전부부장 겸 재일조선청년동맹(약칭 조청)의 부위원장으로 재일북한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1999년 1월부터 5월까지 이씨 등 한총련 조통위 정책실원들이 63회에 걸쳐 인터넷 전자우편을 이용하여 통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소장에 나타난 통신내용을 살펴보면 과연 이 내용들이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할만한 것인지 의문이다. 이씨등이 조씨와 주고받은 내용은 통일축구대회, 농구대회, 북녘역사유적 공동답사 등 남북해외 학생들의 자주교류를 성사하자는 요지의 내용으로, 주로 남측본부에서 사업내용을 제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경찰청 장안동 분실은 이 사건을 증거도 없이 수사도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간첩사건'으로 발표하여 사건을 왜곡시키고 심각하게 인권을 침해한 것이다.

한총련 대표로 방북한 학생들에게 회합 통신 혐의 적용
국정원은 1998년 11월 3일 황선(덕성여대)씨를, 1999년 9월 2일 황혜로(연세대생)씨와 전국연합 이성우 씨 등 6명 등 방북인사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밀입북'한 것으로 규정,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탈출(6조2항)죄를 적용했다. 또한 방북기간동안 북한측 인사들과 회합했다며 8조1항을 적용했다. 황선씨는 평양도착 기자회견시 조선중앙통신사 등 북한신문, 방송기자 30여명에게 체북계획을 설명했고, 평양시내에서 개최된 '통일시가대행진'에 참가, 평양시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고 조국통일 구호를 외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소감을 밝히는 등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했다는 것이다. 특히 8월25일 북송비전향장기수인 이인모씨 집을 방문한 것도 '반국가단체의 구성원과 회합했다'며 문제를 삼았다. 황혜로씨 등은 방북 기간동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 민족화해협의회 의장 김영대, 민화협 부의장 김령성 등과 만나 연방제 통일방안 확산투쟁,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등에 대하여 논의하거나 범민족통일대축전 등에 함께 참가하는 등"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북한 이가 통상적으로 여는 기자회견이나 평양시민 환영대회 참석 등에 대해 회합죄를 적용한 것은 무리한 처사이다. 또한 최근 북을 방문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고 많은 이들이 김영남, 김령성, 김영대 등 북측 고위급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유독 이들에 대해서만 회합죄를 적용한 것은 차별적 법 적용이라 할 것이다.

전국연합 집행위원장 회합통신 공모 혐의 적용
경찰은 1999년 12월 19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집행위원장 한충목씨를 국가보안법 위반등의 혐의로 체포, 구속했다. 한씨가 위 이성우 씨 등과 공모공동하여 민족대토론회를 추진, 베이찡에서 위 토론회를 개최하여 북측 대표인 김령성 등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했다는 것이다. 한씨가 민족대토론회에 직접적으로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공모공동정범으로 회합통신죄를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한씨는 당시 전국연합이 주최하는 모든 행사에 대해 총괄지원하는 집행위원장직을 맡고 있었으며 토론회 역시 전국연합 주최행사였음으로 한씨의 역할은 포괄적 지원이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씨가 민족토론회 진행과 관련 준비과정에 참여한 것은 토론회의 구체적인 일정, 장소, 내역 등이 합의되기 이전의 초기 단계에 불과할 뿐이어서 과연 이것이 공모의 증명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한씨의 회합통신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2001년 통일대축전 방북인사 회합통신 혐의 적용
국정원은 지난해 8월 21일 '민족통일 대축전'과 관련하여 방북했던 김규철(범민련 부의장)씨 등 범민련 간부 6명을 김포 도심공항터미널 입국심사대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구속했다. 김씨 등이 애초 "'범민족회의'를 할 목적으로 정부의 방북승인 규정을 악용하여 탈출, 8월 16일 남.북.해외 범민련 인사들과 강령 개정을 하는 등 반국가단체 구성원들과 회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이에 대해 정부당국의 승인을 거친 적법한 입북이었으며, 문제가 된 회합역시 정부의 승인하에 방북한 남측 대표단에 대해 정부가 포괄적으로 승인한 '부문별·단체별 모임'의 일환에 불과한 것으로 승인의 범위 내에 있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남측의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북측 직총의 만남, 남북 여성대표들의 만남, 청년학생들 모임 등과 마찬가지로 범민련 인사들 역시 북측의 범민련 성원들과 간담회 형식의 부문별 모임을 가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상 탈출 및 회합 혐의를 둔 것은 무리한 처사라고 반박했다.
또한 '범민련 3자협의회'에 대해 국정원과 검찰은 '범민족회의'로 규정하고 있는데 3자협의회는 범민련 규약에도 없는 회의로서, 방북과정에서 이루어진 상견례를 겸한 일종의 간담회 형식의 위 모임의 별칭이었을 뿐, 검찰이 주장처럼 범민련의 '범민족회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당시 모임에서 협의된 사항에 대해 범민련은 "강령중 연방제 통일방안을 삭제하고 규약중 범민족대회 관련 규정을 삭제한 것으로 이는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이 모임은 검찰의 주장처럼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제까지 범민련 이적규정의 핵심근거가 되었던 연방제 통일방안과 해마다 정부와 마찰을 거듭해온 범민족대회 관련 규약을 삭제함으로써, 현실을 적극 반영한 고려로써 이적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특히 범민련 강령 개정문제는 6.15 선언이후부터 이미 논의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 모임을 위해 방북했다는 것은 지나친 논리비약이라 아니할 수 없다.

증거능력 인정되지 않아 회합통신죄 무죄판결
민혁당 사건(반국가단체 구성 등)으로 구속기소된 이들 가운데 하영옥, 김경환, 심재춘씨에 대해서는 대남공작원 진운방(사망)을 만났다는 이유로, 최진수, 한용진, 임태열씨에 대해서는 반국가단체라 규정된 민혁당 조직원을 만났다는 이유로 각각 회합통신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서울지방법원(제23형사부, 부장판사 김대휘)은 2001년 2월 8일, 최진수씨의 혐의사실 가운데 김경환씨와의 회합 혐의에 관하여 무죄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김경환이 반국가단체인 민혁당의 구성원인지에 관하여는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며, 또한 김경환이 1991년경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최씨가 이 사실을 알았는지에 관하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재판부는 한용진씨가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 이석기(수배중)씨와 회합한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이 제출한 증거(사진2장)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또한 한씨가 이씨를 만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내용의 대화를 나누었음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회합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결했다.
한편 2001년 3월 6일 체포, 구속된 임태열씨는 "1992년 민혁당 '학생운동사업부'의 책임자로 지도적 임무에 종사(3조1항2호)해왔으며, 하영옥 심재춘 등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했다(8조1항)"는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임씨에게 적용된 회합·통신죄도 적용상 문제가 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임씨가 하씨의 지시를 받아 심재춘씨를 하씨에게 소개한 것을 문제삼아 반국가단체 구성원들과 회합통신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대법원에서는 반국가단체 구성원 상호간의 회합통신 등의 행위라 할 지라도 이는 반국가단체의 구성가입죄에 포괄된다고 볼 수 없고 그 반국가단체의 구체적 활동 등도 이를 규제하여야 하므로 상호간의 회합은 따로 8조1항의 죄를 구성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반국가단체의 구체적 활동'은 그 회합자체가 어떠한 임무수행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야 할 것이므로 임씨의 경우처럼 공소장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어떠한 임무수행과 관련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고, 또 임씨가 그러한 것을 사전에 인지한 상태에서 만남을 주선한 것인지 증명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3. 회합통신 조항의 문제점
이제까지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발생한 회합통신 사건을 살펴보았다.
헌법재판소는 1997년 국가보안법상의 회합·통신죄가 성립하려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만 축소적용되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물론 이 결정은 구법에 대한 결정이지만, 신법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헌재는 이 결정에서 "이 조항을 문리대로 해석적용한다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또는 국민의 생존 및 자유에 아무런 해악도 끼칠 우려가 없는 사항에 관한 회합·통신 등마저 처벌대상이 될 우려가 없지 않다. 이는 행복추구권에서 도출되는 국민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 및 통신의 자유 등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위험성이 있고 죄형법정주의와 평화통일의 원칙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결정은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만나고 통신하였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범죄가 되는 것이 아니며, 그러한 행위로 인하여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위 적용사례들에서 본 바와 같이 실제 법집행에서는 그 행위가 실질적으로 해악을 끼치지 않는 경우나, 만남자체가 커다란 위해를 가져오지 않았음에도 법집행기관이 단지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판단으로 처벌하는 자의적 법집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라는 주관적 목적요건이 전제되어 있지만 어떠한 경우가 과연 위의 목적요건을 충족하는 것인지 뚜렷하지 않다. 이러한 개념의 불명확성은 필연적으로 수사기관의 자의적 법해석과 집행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같은 북한인사를 만났더라도 누구에는 '이적성' 여부를 추정해 보안법을 적용하고 누구에게는 그렇지 아니한 차별적 법적용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큰 문제라고 할 것이다.
또한 회합통신죄가 성립하려면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라는 명확한 증거와 아울러 행위의 대상이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가 증명되어야 한다. 실제 그 사람이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 할지라도 만난이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을 때 무죄로 판결한 사례가 있지만(위 최진수 사례), 대부분의 경우 단지 수사기관이 제시한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는 '사실확인서', '영사증명서' 한장으로 기소, 유죄판결되고 있다.
특히 회합통신죄는 남북교류협력법과의 충돌을 빚고 있는 바, 위 사례의 대부분은 연락(만남)이 남북교류와 협력을 위한 경우이므로, 굳이 이를 처벌하려면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아니하고 북한 주민들과 접촉했다는 남북교류협력법을 적용해도 될 터이다. "남북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에 관하여는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안에서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이 법을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남북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것에 대해서 마저 포괄적으로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죄를 적용함으로써 법충돌이 일어나는 모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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