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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대오(활동가조직) 사건 (03-11-26)
민가협11-17 12:47 | HIT : 3,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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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대오(활동가조직) 사건"


<민주가족 26호> / 2001년 7월



1. 자주대오(활동가조직) 사건의 실태
이른바 자주대오 또는 활동가 조직 사건(이하 자주대오 사건이라 통칭한다)은 1991년 6월 서울대 민족해방활동가 조직 사건을 시작으로 2001년 5월 단국대 활동가조직 사건에 이르기까지, 10여년 동안 26개 대학에서 총 286명의 구속자를 낳은 사건이다.
이들 사건에 대한 공소사실의 공통점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한 이적단체를 결성하여 학내 불법시위를 주도하고 조직원들을 한총련(전대협) 지도부나 총학생회 간부로 진출시켜 친북활동을 배후조종해왔다"는 것으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7조 3항)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검·경의 주장과는 달리 이들 사건 구속자의 대다수는 수사기관이 강압수사를 통해 받아낸 허위자백을 기초로 조작한 사건이라며 조직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한편, '조직' 자체를 시인한 경우라 하더라도, 정치적 입장과 견해가 비슷한 이들간의 총학생회 선거를 준비하기 위한 일시적인 모임이었다거나(전북대 혁신대오 사건, 한양대 반미구국한양 사건, 광운대 자주대오 등), 학생회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토론모임 이었다고(한신대 자주대오 사건 등) 주장하는 등 '이적단체'라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반박했다.
한편 자주대오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구속자 대부분이 총학생회 간부라는 점 △그 간부들이 대체적으로 학생운동 내부의 정치적 입장에 따른 분류로 볼때 통상 민족해방(NL)계열이었다는 점 △대부분 사건에서 유죄의 증거는 자백이나 진술로써 그외 이적활동을 증명할 뚜렷한 물증이 없다는 점 등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적단체'로 기소되었지만 단체성과 이적성을 지닌 조직이라고 보기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할 것이다. 또한 이들 사건에 대한 공소장을 살펴볼 때, 단체의 명의 자체가 없고, 조직의 형태로 어떠한 행위를 했는지에 대해 내용이 적시되어 있지 않고 있다. 결국 검찰은 이들 조직의 어떤 행위들이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체포 및 수사과정의 문제점

1) 지난 시기 학생회 활동등을 빌미로 대량체포, 구속
지난 10여년간 발생했던 자주대오 사건들을 살펴볼 때 특이한 점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평균 10여명 이상의 대량구속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수사기관이 대량 체포했는데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못한 사례도 많았다. 특히 원광대와 단국대(천안)의 경우, 사건 첫 발생이후 수년이 지나 '재탕'하는 등 대량 인신구속 사태를 빚기도 했다.
이는 수사기관이 뚜렷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순히 2~3년전의 학생회 간부등으로 활동한 전력을 문제삼아 조직사건으로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현재 학생회 등의 활동과 무관한 2~3년전 학생회 간부들을 체포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체포당시 직장인, 군복무 등으로 직업과 신분이 뚜렷하고, 이미 과거의 일(학생운동)이므로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적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인신구속을 남발한 것은 결국 경찰 등 수사기관의 '건수올리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2) 진술만으로 유죄의 물증을 삼을 수 없다
자주대오 사건은 주로 증거로 채택되는 점이 "조직에 가입했다", "조직에서 모임을 가졌다"는 식의 '진술'이다. 조직체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한 두 사람의 진술이 아니라 명백한 증거와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도, 수사기관들은 오직 '진술'에만 의존했다. 따라서 수사기관은 이러한 '진술'을 확보하기 위해 관련자 가운데 몇사람을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등 강압수사를 했고, 그렇게 확보한 진술을 바탕으로 나머지 구속자들에게 이를 인정하도록 강압적으로 심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기관의 이러한 수사방식이 되풀이 되는 것은 국가보안법 사건에 있어서 명백한 증거 없이 일부의 자백만으로도 유죄판결하는 관행이 팽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국가보안법 사건에 있어서 범죄 입증 책임을 검찰에 두지 않고 피고에게 미루고 있는 재판관행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주대오 사건에서 재판부가 대부분 '진술'을 결정적인 증거로 보고 유죄판결을 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2항은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는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그 피의자이던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증거능력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와 관련, 과기대 자주대오 사건 상고심을 담당한 대법원은 "증거능력은 원진술자에 의하여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외에, 당해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하여야만 취득하는 것이고, 원진술자들이 법정에 출석하여 그 내용을 인정하였다 하더라도, 피고인들이 이 서류를 증거로 함에 동의, 즉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증거능력을 취득할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이를 제외한 다른 증거들에 의하여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할 것이라며 원심을 파기하고 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즉, 원진술자가 피고인들과 공범관계에 있다하더라도,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는 이상 유죄의 증거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전북대 혁신대오 1심 재판을 담당한 전주지법은 "이 사건 피고인들 중 일부의 자백이 일관성이 없고 신빙성에 의문이 있는 점"등의 이유로, 이는 진술조서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며 이적단체 구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러한 판결들은 자백 또는 진술의 증거능력에 대해 보다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로써 자백만을 의존해서 구속기소하고 유죄판결하는 관행에 대해 제동을 건 판결이라 할 것이다.

3) 기무사와 경찰청의 합작수사
자주대오 사건은 대부분의 경우, 먼저 군입대하여 현역에 복무중인 군인들을 체포, '일체의 자백'을 받은 후 민간인들에게 확대하는 경향성을 보인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 아니한 경우라해도, 자주대오 사건의 구속자 가운데는 군에 입대한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모두 군입대 전의 학생운동 전력이 문제가 되어 구속이 되었는데도 기무사는 군대내에서 좌경활동을 해온 것처럼 발표했다.
예컨대 1991년 6월 청주대 자주대오 사건의 경우, 기무사와 경찰은 이 조직이 "학-군연계 지하 이적조직" 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의 기소내용에는 이들이 어떠한 '군사투쟁'을 했는지조차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또한 기무사는 학생운동 전력을 가진 이들이 입대할 즈음 통상적으로 경찰로부터 이들의 입대전 활동을 통보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2001년의 단국대 활동가조직 사건에서는 2명의 현역군인이 이 사건에 관련되어 구속되었는데, 보도에 따르면 "기무사는 이들이 입대할 당시 경찰로부터 입대전 이적활동 사실을 통보받고 내사중 이었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이 입대하기전 부터 이미 '범죄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걸 알고서도 체포하지 않은 이유가 혹여 향후 사건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는지 의문스럽다.
이는 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군인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이용하여, '군대'라는 상대적으로 밀폐되어 있는 곳에서 은밀하게 수사할 수 있다는 점, 피의자가 방어권을 행사하기가 어려운 점을 악용해 군수사기관이 쉽게 자백을 받아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많은 자주대오 사건에서 나타난 예처럼, 군인으로부터 받은 자백이 유죄판결의 유력한 증거가 되기도 했다.
한편 기무사는 군사법원법 44조에 따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수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미 활동을 중단하고 군에 복무하고 있는 현역군인들을 학생운동 전력을 문제삼아 구속수사한 것은 기무사의 수사권 남용과 국가보안법을 자의적으로 남용한 것이라 할 것이다.
또한 기무사에서 수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들을 면회할 수 있는 시간을 한정적으로 미리 정해주고, 그 시간에만 면회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

4) 한총련(전대협)의 배후조직으로 왜곡
자주대오 사건에서는 특히 이들 조직이 "총학생회를 배후조종하거나, 또는 조직원을 한총련 등 지도부에 파견"했다고 발표하고 있어서 예외없이 한총련(93년 이전은 전대협)과 연계를 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1996년의 자주대오 사건들은, 한총련의 '8·15 범청학련 통일축전'과 관련해서 검찰이 "한총련 와해" 방침을 밝히고 '한총련 좌익사범 합동수사본부'를 공식발족시켰던 8월을 전후해서 대규모로 발생했다. 그런데 당시 사건 발생 대학의 총학생회 현황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총학생회장이 한총련 의장 또는 지역총련 의장 등 주요 간부직을 맡고 있었는데, 이는 수사기관이 한총련의 배후에서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이미지조작"의 용도로 자주대오를 활용한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또한 이는 검·경 등 수사기관이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낙인'찍기 위해 분위기를 조성한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3. 검찰의 주요 공소사실과 문제점
검찰은 이들 자주대오 사건을 국가보안법상 7조3항(이적단체 구성·가입)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이적목적과 그 단체가 계속적이고도 최소한의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조직적이고도 실질적인 결합체라는 단체로서의 실체를 갖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어떠한 조직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기 위하여는 단체성과 이적성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할 것이므로 자주대오 사건들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1>계속적이고도 최소한의 지휘통솔체계를 갖는 단체
한 집단이 이적단체로서 '이적목적 수행을 위한 조직으로서의 실체'를 가지려면 최소한 조직의 성격과 방향을 규정하는 강령·규약등의 내용, 지휘통솔체계, 조직으로서 정연한 체계와 질서, 계속적인 활동 여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사건의 공소장을 살펴볼 때 졸업 후 활동중단으로 계속성이 없고, 문제의 활동 또한 졸업직전 까지이며, 지휘통솔체계라는 점을 볼 때도 총학생회 등 학생회 간부활동을 한 이들로 나타나고 있고, 그 체계또한 학생회 조직과 일치할 뿐이므로 결국 이적단체로서의 실체를 갖춘 것이라 보기 어렵다할 것이다.
이와관련 전북대 혁신대오 사건에서 전주지법은 "총학생회를 장악하여 배후에서 조종하기 위한 비밀조직이라는 전북대 혁신대오의 간부가 총학생회 간부와 구성원 및 직책이 대부분 일치한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이적단체 간부 인선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총학생회 간부 인선을 '전북대 혁신대오' 조직의 간부 내정이라고 본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며 이적단체 구성·가입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 이적성
자주대오 사건의 공소장을 살펴보면, 이들 조직이 결성된 이후 활동내역으로 적시된 사항은 주로 정치학교, 애국자대회 등의 모임과 총학생회 등 학생회 선거 준비를 위한 모임이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농활학교, 새내기 학교, 민족자주학교 등 일반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적인 행사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자치행사가 '총학생회를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또는 주체사상을 전파하기 위하여' 구체적이고 계속적인 활동을 하였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한편 공소장에 따르면 이들 사건에서 검찰이 조직원들의 총회 또는 결성식이라고 지목, 이적활동의 주요근거로 제기하고 있는 '애국자대회'의 경우, 대체적으로 정치적 입장과 견해를 같이하는 이들이 모여 총학생회 선거에 자파 후보를 내고 선거운동을 하기 위한 모임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자주대오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자파 후보를 추대하는 것이 임무, 강령이고 학생회를 구성하기 위한 조직이 곧 자주대오의 조직이 되는 것이다.
또한 공소장에서는 이러한 단체들이 '사상학습'을 했다며 이를 조직활동의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사상학습 교재의 내용은 주로 한총련이나 총학생회에서 발행한 정세분석에 관한 문서(유인물), 또는 소위 구국의 소리 방송 문건 등으로 적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서들은 주로 추상적인 선전 구호 등으로 이를 소지하고 읽어보았다는 이유로 이적단체 조직활동의 근거로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즉, 위 내용으로 사상학습을 하고 난후 그것에 기반해 어떠한 활동을 하였다거나, 또는 그 조직 명의로 공동의 행동을 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만이 그 모임의 이적활동 여부를 따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적단체' 문제에 대해 서울고법은 "어느 집단의 행위중에 일부 이적성을 띤 행위가 있다고 하여 그 집단 전부를 바로 이적단체로 규정할 수 없으며, 또한 그 집단이 제작한 표현물 가운데 일부가 이적성을 띤다고 하여 그 표현물이 이적표현물이 될지언정 그 집단이 바로 이적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이렇듯 자주대오 사건들의 공소장에 나타나있는 이적단체로서의 주요근거로 제시된 활동들은 이렇듯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이적행위인지에 대한 증명이 되지 못한다 할 것이다.

4. 결론을 대신하여
이제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들 자주대오는 최소한의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조직이라기 보다는 학생운동 내에서 통상적으로 '자주대오'라고 일컬어지는 정파임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이 특정 조직으로 확대 왜곡시킨 것으로 보인다. '자주대오'는 일반적으로 민족해방계열(NL) 계통의 학생회 구성원들을 통칭하는 것으로, 그 용어는 특정 조직 이름을 일컫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러한 방향에 따라 학생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 또는 그 모임이라는 취지의 보통명사라 할 것이다. 다시말해 이는 정치적 경향성에 따른 분류방법이며, 또한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할 자파 후보를 뽑고 이의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 등의 활동을 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임에 대해 '이적단체로서 정연한 조직체계와 활동을 충족'시키는 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검찰은 이렇듯 명확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채 막연히 이적성을 추정함으로써 수많은 이적단체를 양산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특히 구속자들이 1심 재판의 결과 대부분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에서도 수사기관의 무작위적 구속기소 관행을 엿볼 수 있다. 한편 국가보안법 그 자체의 모호성과 그로 인한 수사기관들의 자의적인 법 적용과 면밀한 검토없이 검찰의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하여 유죄판결하는 법원의 관행이 무려 286명의 이적단체 구성원을 양산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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