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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검찰, 윤기진 의장 징역.자격정지 각 7년 구형
민가협07-25 01:48 | HIT : 7,331
검찰, 윤기진 의장 징역.자격정지 각 7년 구형  
석방대책위 "실형 구형은 시대 거스르는 반통일적 처사"  

2008년 07월 21일 (월) 통일뉴스

검찰은 2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502호 법정에서 열린 공판에서 "이적활동을 위해 수배생활을 용인해 왔다"고 9년간에 걸친 수배생활에 대한 정상참작을 배제하면서, "이적성은 그동안의 재판과정에서 입증됐고, 2008년에도 범청학련의 의장을 하고 있다"며 이같이 구형했다.

윤기진 의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9년간 수배생활을 해 오다 지난 2월 27일 구속됐다. 윤 의장은 국가보안법 상 잠입탈출, 이적단체 가입, 회합통신, 이적표현물 제작 및 반포, 이적표현물 소지, 고무찬양 등의 혐의를 받고, 8차례에 걸친 법정공방을 벌여 왔다.

법정공방의 주요 쟁점은 1999년 당시 한총련 의장이었던 윤 의장이 평양에서 개최된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등의 행사에 참가하기 위한 한총련 방북대표로 황 아무개씨를 파견한 것에 대한 보안법 6조 '잠입.탈출 죄'의 성립 여부이다.

'잠입.탈출'을 규정한 보안법 6조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변호인단은 최후변론에서 "이북이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단체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면서 "범청학련의 경우 남과 북 해외 3자가 공히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조직으로써 어느 단체가 다른 단체의 상부로 볼 수 없는 구조"라고 반박했다.

이어 "황 아무개씨가 북한에 가서 수행한 일은 6.10남북청년학생 실무회담, 남북대학간 청년학생 초청사업, 8.15통일대축전, 10차범민족대회, 이북자매결연대학 방문사업, 제4기 범청학련 공동사무국 건설 등 기존 범청학련이 해 왔던 일들에 불과한 것"이라며 "오늘날의 교류협력에 관한 사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의장 역시 최후진술을 통해 "순수한 통일운동에 특수목적 수행이니, 지령수수니 하는 딱지를 붙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99년 황 아무개 학생이 북에서 참여했던 8.15 통일축전과 통일축구, 농구대회, 북녘 유적 답사는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지난 8년간 노동자.농민.학생.여성.문인.정치인.종교인들이 수 없이 벌여온 통일행사들과 다르지 않은 동일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보안법에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명시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8년동안 북녘 누구의 입에서도 , 어느 문서에서도 '대남적화'라는 표현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며 "우리와 마주앉아 대화와 협력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동포에게 반국가단체라는 주장을 하는 것도 심각한 모순"이라고 말했다.

윤기진 의장 석방대책위는 공판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열어 "10여년이 지난 방북대표 파견건과 통일을 예비하며 동족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문제 삼으며 윤기진 의장에게 실형을 구형한 것은 시대를 거스르는 반통일적 처사"라고 검찰의 구형에 강하게 반발했다.

윤 의장에 대한 선고공판은 내달 20일 오후 1시 30분에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다.


"통일사업은 누구의 지령.명령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윤기진 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 최후진술서 전문  

2008년 07월 22일 (화)

<최후진술서>

1. 존경하는 재판장님.

어느새 구속된 지도 다섯 달이 되었습니다. 주변의 생각과는 달리, 감옥에서 보내는 시간은 빨리도 지나갑니다. 12년 전 첫 감옥생활, 더디게 가던 시간에 대한 그 답답함과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대학시절 집을 나선 자식을 기다리며 어느덧 환갑을 맞아 버린 부모님이나, 아빠가 처한 상황을 이해할 정도로 훌쩍 자라버린 딸아이를 볼 때엔 오히려 가는 시간을 잡지 못하는 답답함이 더욱 큽니다.

지금의 힘든 순간들 마다마다에서 저를 높은 담장 아래, 창고 같은 좁은 방 안에 가두어 놓은 국가보안법의 질기고도 질긴 존재감이 새삼스레 다가옵니다. 한쪽은 잠입.탈출, 회합.통신, 찬양.고무라는 아직까지도 듣기에 거북하게 느껴지는 국가보안법 조항들로 기소를 하고 한쪽은 그것이 죄과 될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항변하고 있는 이런 상황이, 2008년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현실이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사실 국가보안법은 전 사회적으로 폐지를 위한 운동이 한창 고조되었던 2004년에 이미 개정.폐지 여론이 70%를 웃돌았으며 최근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운동단체들에서도 여론조사와 서명운동을 하지 않을 정도로 국민 다수에게는 사문화된 법입니다.

북진전쟁론자였던 이승만 정권이 친일청산과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하고 제거하기 위해 1948년 국회에서 임시로, 그리고 날치기로 통과시켰던 국가보안법이 올해로 벌써 60의 나이를 시위하며 아직도 서슬파란 칼춤을 추고 있는 현실은 민주주의와 인권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유엔의 인권위원회와 국제 엠네스티에서 연례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맞은 한반도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북과 미국도 작년에 평양.뉴욕.베를린.베이징을 오가며 소위 ‘밀월’이라 불리는 관계개선의 중요한 징후들을 보이더니 지난 6월에는 테러지원국 해제, 핵 신고서 제출의 가시적 성과를 내며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된 9.19공동성명 2단계 조치를 마무리하고 한반도 비핵화, 북.미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다음 3단계로 빠르게 들어서고 있습니다. 북.미관계 개선에서도 파란불이 켜지고 있는데 정작 남과 북, 우리민족끼리는 국가보안법과 반국가단체라는 구시대적 규정에 발목이 잡히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보수정부의 출현으로 기존의 남북관계가 2000년 이전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6.15공동선언이 제시한 우리민족끼리의 정신과 통일을 향한 정당한 원칙과 방도들은 많은 민족성원들의 지지와 공감 속에 꿋꿋하게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 개원 연설에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겠다는 발언을 하고 한나라당에서도 남북 국회간 정치회담을 수차례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들까지 이렇게 나서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곡절은 있겠지만 6.15 통일시대가 거스를 수 없는 대하로 자리매김 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국가보안법을 기억에서 지워버린 민심을 따라서, 그리고 빠르게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무드에 발맞추어, 거스를 수 없는 민족의 통일지향을 따라서, 이제라도 국가보안법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억울한 피해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2. 한총련 방북사업의 역사는 길게 본다면 ‘38선을 베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결연한 각오를 밝히시며 평양을 향하신 김 구 선생님부터이고, 짧게 보더라도 꼭 같은 각오로 방북을 단행하였던 89년 고 문익환 목사님과 임수경 선배부터입니다. 89년 이후로 거의 매해 이어진 청년들의 방북사업은 그 자체로 반세기 세월여 굳어져 가던 분단장벽에 파열구를 내는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그 과정에 확인된 동포 서로간의 뜨거운 통일의지는 대중적 통일운동으로의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겠지만, 민족상봉의 감동적 화폭에 반국가단체라는 규정이 끼어들 자리는 없습니다.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8년동안 북녘 누구의 입에서도, 북녘 어느 문서에서도 저는 ‘대남적화’라는 표현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유일하게 검찰의 공소장에서만 ‘적화통일’이라는 문구를 접해 보았습니다. 북에서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방안의 기본 골자는 1민족 1국가 2정부 2체제입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그대로 두고서 통일하자는 ‘2체제론’과 ‘적화통일’은 삼척동자가 보더라도 완전히 상반되는 주장입니다. 분명한 근거와 명분도 없이 억지다짐 식으로 반공이 국시로 되던 시절의 논리를 가지고 한 핏줄, 한 형제에게 적화통일이라는 굴레를 씌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7.4공동성명, 91년 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마련하는 장에서 우리와 마주앉아 대화와 협력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동포에게 반국가단체라는 주장을 하는 것도 심각한 모순입니다.

순수한 통일운동에 특수목적수행이니, 지령수수니 하는 딱지를 붙이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99년 황혜로 학생이 북에서 참여했던 8.15통일축전과 통일축구.농구대회, 북녘유적답사는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지난 8년간 노동자.농민.학생.여성.문인.정치인.종교인들이 수없이 벌여온 통일행사들과 다르지 않는 동일한 사업이었으며 지난 6월 15일 금강산에서 개최된 민족통일대회와도 같은 성격의 순수한 통일사업이었습니다. 오는 8월 14일에도 남녘의 120명 청년학생들이 4박 5일의 일정으로 백두산.평양.묘향산 답사와 남북청년학생 연대모임을 위한 방북통일사업을 한창 준비하고 있습니다. 역시 99년과 다르지 않는 사업입니다. 통일사업은 절대로 누구의 지령이나 명령으로는 할 수가 없으며 스스로가 애국애족의 지향을 가지고 벌이는 자각적인 운동입니다. 우리 청년들의 심장을 움직이는 것은 민족적 양심의 명령과 이성이 내리는 지령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방북사업은 2000년 6.15공동선언이 발표되자 마자부터 바로 중단하였습니다. 2000년 이전에 벌인 방북사업은 통일운동이 원천적으로 이적시, 불법시 되던 시대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6.15공동선언의 발표와 더불어 우리 청년들은 통일운동이 합법적이고 대중적인 공간으로 번져 가리라는 기대와 지향을 가지고 기존의 운동방식에서 과감하게 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방북사업 중단은 그 일환이었습니다.

아내는 말 할 것도 없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평양에서 태어난 둘째 아이까지 해서 저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방북을 이미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북녘 땅을 밟는 이남 사람이 백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지난 90년대 한총련 방북사업에 대해서 시대에 걸맞는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한 시기라 생각합니다.

통신연락사업에 대해서도 기본은 방북사업의 취지와 동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2000년 이후에 범청학련 자체의 사업보다는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를 비롯한 수십, 수백의 청년과 학생 통일운동조직을 꾸리고 운영하기 위한 데로 기존의 역할이 많은 부분 이동되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전에는 범청학련 남측본부 대표 이메일도 없었으며 그 이후에 사용된 bomchong@hanmail.net도 실질적으로 합법활동을 하고 있는 범민련 남측본부 메일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통신연락을 하였습니다.

통신연락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수백만의 대중적인 동포상봉이 이루어지고 6.15공동선언 실천 남북해외 공동위원회와 같은 여러 통일운동 연대조직이 생겨남과 더불어 다양한 통신, 연락, 만남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한 법 적용이며 표적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범청학련에 대한 이적단체 규정도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53년 7.27정전협정 4조 60항에서 명시된 ‘3개월 이내 외국군대 철수’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것이 문제로 될 수 없으며, 6.15공동선언에도 언급된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한 지지가 이적시되어서도 안 되며, 이젠 실현단계에 들어선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 주장에 ‘친북’이라는 딱지를 붙여서도 안 될 것입니다. 더욱이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의 기조와 지향에 맞게 기존의 주장과 구호, 운동방식까지도 규정하고 합법적, 대중적 통일운동을 지향하며 운영하는 단체에 이적이라는 굴레는 납득되기 어려운 처사입니다.

그리고 범민련 북측본부, 범청학련 북측본부의 성원들이 지금도 민간교류를 위한 행사장에 북녘 통일단체의 대표 격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남쪽의 각계각층 단체들이 민간 차원의 남북해외 공동조직을 만들고 통일행사를 정례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범민련과 범청학련은 남북해외 통일애국진영 안에서 90년대의 선도적 노력과 역할을 인정받고 지금도 변함없이 6.15공동선언 이행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범민련, 범청학련이 지난 시절에 외치던 구호와 주장이 현실화되고 있는 이제는, 이적단체라는 부당한 굴레 대신에 통일애국단체라는 본연의 이름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공소장에는 범청학련 남측본부가 이적단체라는 근거로 범민련 남측본부에 대한 가입을 주로 문제시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범민련 남측본부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도시 마다에 공개적인 사무실을 두고서 수백 명의 일군들이 각 자의 명함까지 들고서 활발히 그리고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통일운동단체입니다. 이것도 2000년 이후의 많은 변화들 중에 하나입니다.

이 자리가 국가보안법이라는 존재 때문에 만들어진 자리이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분명히 반영일 것입니다. 통일을 바라는 민족성원 모두가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이 제시한 우리민족끼리라는 원대한 지향과 평화.번영을 위한 구체적 방도들에 대해서 뜨거운 지지를 보내주었습니다. 극단적 냉전의 시대가 만들어 낸 이적의 잣대, 적과 동반자에 대한 잘못된 기준에 대해서 시대가 요구하는 올바른 재설정이 또한 필요한 시기입니다.

3. ‘이적표현물’과 관련해서는 양이 많은 관계로 종류부터 나누어 보겠습니다. 우선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기소된 익명의 글들에 대한 삭제여부와 관련해서는 위헌제청으로 입장이 대변되었습니다. 최근 촛불시위와 관련한 인터넷상의 표현들에도 과도한 통제를 하려는 당국의 처사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에 대한 항의가 잇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없이 넓고도 깊은, 바다와도 같은 인터넷 공간에 대한 통제위주의 정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언론학자들 위주로 구성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법률적 신중성보다는 정치적 판단으로 심하게 기울어졌다는 비판도 최근 들어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물며 국가보안법 관련 사안에 대한 판단은 더욱 무리이며 사법부가 할 일에 대한 월권행위입니다.

다음으로 범청학련 남측본부 명의로 제작된 표현물인데, 대부분이 이북을 바로 알리기 위한 도서들이며 각종 자료에서 인용된 글들이 많습니다. 검찰 측에서 제출한 ‘선군정치 20문 20답’의 감정서에도 ‘중립적 기술방식’이라 평할 정도로 이북 정치제도와 사상에 대한 소개차원의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작성한 본인 명의의 칼럼, 강연록, 기고문, 옥중서신입니다. 여기에는 저의 자주.민주.통일에 대한 지향과 대미관, 대북관이 가감 없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풀’로 유명한 고 김수영 시인의 미발표 유작이 세간의 화제였습니다. ‘김일성 만세’라는 제목의 시였는데 ‘김일성 만세’를 주장할 수 있어야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는 요지의 시였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임의로 제약하고 처벌한다는 발상은 전 근대적이며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지향과도 정면 배치되는 것입니다. 설사 처벌하려고 해도 인간의 생각을 몇 프로까지는 유죄, 몇 프로까지는 무죄라는 법적기준을 세우기조차 난감할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새빨간 색안경을 쓰고 사상검증, 표현통제로 활개 치는 사회에서는 건강한 토론문화는 물론이고 민주주의의 발전도 요원한 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최근 촛불시위가 지속.확대되자 일부 극우보수세력들은 어김없이 ‘친북세력’ 배후설을 퍼뜨리고 극렬반북시위를 조장하는 것처럼, 이남에서 역사적으로 ‘반공이데올로기’를 기득권 세력이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면 버릇처럼 들고 나오는 방패막이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북에 대한 왜곡과 잘못된 인식들은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들마다에서 민주화의 발목을 잡고 자주와 통일을 위한 운동에도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북바로알기’ 사업의 절박한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90년대 극우보수세력들의 반북공세에서 주요 고리가 주체사상이었다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선군정치’가 주된 소재로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북바로알기 차원에서 ‘선군정치’의 배경이 ‘대남침략’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핵태세검토보고서, 5026, 5027, 5029, 5030과 같은 미국의 다종다양한 대북한 핵선제타격 작전계획에 있다는 것과, 대량살상무기가 없는 것이 분명함에도 중동패권과 석유이권에 눈이 먼 미국의 침략적 근성으로 벌어진 이라크 침공사태와 비교해 볼 때 북한의 대 미국 전쟁억제력에 긍정성이 있다는 것, 일각의 오해와 달리 국방이원회의 중추적 역할이 헌법상으로도 보장되는 ‘선군정치’는 군사독재로 단순화 할 수 없는 총체적인 정치체제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려 한 것입니다.

저는 대학시절부터 반전반핵가를 부르던 핵반대론자입니다. 물로 지금도 한반도비핵화는 저의 변함없는 목표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14,000여 기의 핵무기를 들고 위협하는 미국을 상대로 힘겹게 싸우고 있는 동포에게 일방적인 핵폐기를 요구하는 순진한 반핵반전론자는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공동성명과 2007년 2.13, 10.3합의의 기본정신은 행동 대 행동,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북의 핵포기에 상응하는 미국의 대북한 적대정책의 항구적, 제도적 폐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표현물이 객관성만을 지향한 것은 아닙니다. 서로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남북의 통일에 있으며 이러한 특수한 관계에서 서로에 대해 먼저 고무하고 먼저 찬양하는 것, 긍정은 살려주고 부정적인 것은 민족적 애정을 가지고 보듬어 주는 것이 더욱 어렵고 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통일이 목표라는 것에 공감이 된다면 말입니다.

4. 대륙침략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19세기 말부터 침략선을 들이 밀고 가쓰라-태프트 협정으로 일제 식민 지배를 용인해 주고 분열시켜 지배한다며 38선을 긋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부추긴 침략과 전쟁의 나라인 미국에 분노하고, 한국전쟁 당시의 수 십 만에 달하는 양민학살에 이어서 윤금이 누이부터 효순.미선이까지 살인.강도.강간 등의 강도적 행각을 매일 평균 5건씩 60여년간 일삼아 온 범죄중독자 미국에 치를 떨며, 유독 우리나라에선만 천문학적 액수의 자국군대 주둔비를 강요하고 군사주권도 모자라 경제주권까지 앗아가는 미국을 반대하는 저는 분명 반미주의자입니다.

저의 대안은 민족공조입니다. 체제의 차이와 60년 이산이 가져단 준 이질감보다는 반만년 역사를 가진 민족공통성을 굳게 믿고 있으며, 외세공조.친미사대는 망국의 지름길이며 남북공조.조국통일만이 21세기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한 유일한 출로임을 확신하고 있는 저는 민족공조론자이며 조국통일의 이정표 6.15남북공동선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10.4정상선언의 열렬한 지지자입니다.

반미자주와 민족공조는 이제 이념을 넘어 구체적 실현단계에 들어서 있습니다. 미군철수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60%이상의 국민들이 지지를 밝히고 있으며(중앙일보 2007.9.22 : 62% / 뉴스위크 2008.4.23 :65.1%) 최근 정부의 맹목적인 숭미.친미정책에 대해서도 많은 국민들이 거센 분노를 표출하면서 주권의지를 시위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북아지역이 21세기의 새로운 전략지대로 부상하면서 민족공조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 요구로 절박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독도문제, 그리고 대륙중심의 새로운 경제권 형성에서 남과 북의 민족공조는 위력적인 카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0년의 수배생활동안, 그리고 다섯 달의 감옥생활동안 돌아보고, 또 돌아봤습니다. 어디에 진실이 있는가. 어디에 정의가 있는가. 어디가 진정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인가. 열정이 늘 앞서는 저의 말이나 행동에는 부족함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자주.민주.통일에 대한 지향과 반미.민족공조에 대한 원칙에 대해서는 후회도 아쉬움도 없습니다.

지인들 중에서도 가끔 ‘음지’에서만 지내 온 저의 경직성을 우려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좋습니다. 저도 뜨거운 태양 아래인 ‘양지’에서 저의 지향과 원칙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습니다. 배우고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입니다.

재판부의 용단이 20대 초반에 집을 나서 어느덧 30대 중반에 들어선 청년에게서 늦게라고 수배와 감옥이라는 올가미를 벗겨주고 합법적이고 대중적인 공간에서 청춘의 꿈을 펼쳐볼 기회를 마련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조금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섯 살, 네 살이 된 두 딸 아이입니다.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두 아이에게 준 것이라고는 마음밖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아비가 선택한 삶이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아픈 기억으로 남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차분하던 마음도 어느새 급하게 뛰게 됩니다. 재판부의 인도적 판결이 저의 가족행을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주시기를 또한 간절히 바랍니다.

2008년 7월 21일
윤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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