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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허원근 일병, 타살이 맞다”
민가협02-04 10:47 | HIT : 4,172
법원 “허원근 일병, 타살이 맞다”
사법부 첫 판단…“국방부는 자살로 조작” 9억 배상 판결
* 허원근 : 1984년 의문사

» 허원근 일병 사건 일지



1984년 강원도 화천의 육군부대 안에서 의문사한 허원근(당시 22) 일병이 국방부 발표와 달리 부대원이 쏜 총에 맞아 숨졌으며, 부대원들과 헌병대가 사건을 자살로 조작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와 국방부 특별조사단이 각각 타살과 자살이라는 상반된 결과를 발표하며 충돌한 이 사건의 실체에 대해 사법부가 내린 첫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재판장 김흥준)는 3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그의 죽음을 타살로 규정하고, 유족에게 9억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여러 증거를 종합하면, 허 일병은 1984년 4월2일 새벽에 총을 맞고 사망했는데, 누군가 총을 쐈거나, 반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총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며 “어느 쪽으로 보든 소속 부대 군인에 의해 타살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대표적 군의문사인 이 사건에 대해 의문사위는 2002·2004년 두 차례 조사를 거쳐 허 일병이 타살당했다고 발표했다. 유족은 사건 뒤부터 M16 소총으로 스스로 세 차례 총격을 가해 자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이에 맞서 국방부는 특조단 조사를 통해 “중대장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허 일병이 당일 오전 10시께 가슴에 두 발, 머리에 한 발을 총으로 쏴 자살했다”며 “오른쪽 가슴에 먼저 총을 쐈으나 치명상을 입지 않자 왼쪽 가슴과 머리에도 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새벽에 최초 총격을 당했는데 그날 오전 10시께 두 발의 총격이 추가로 가해진 점, 소속 부대가 사건 조작·은폐에 적극 나선 점 등이 타살의 강력한 정황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사고 직후 대대장과 중대장, 보안대 하사 등은 사건을 자살로 꾸미기로 의견을 모으고 중대원들에게 물청소를 시켜 사망 흔적을 지웠다”며 “중대장은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평소 한 적이 없는 철책 순찰을 했고, 그동안 중대원 일부는 허 일병에게 총 2발을 더 쏴 자살로 위장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누가 허 일병을 살해했는지는 특정하지 못했다. 앞서 의문사위는 노아무개 중사가 허 일병을 숨지게 한 뒤 누군가 추가 총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재판부는 “노 중사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 적은 있지만 총을 쐈다고 보기는 어렵고, 누가 총을 쐈는지는 관련자들 진술이 엇갈리고 증거가 부족해 판단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2기 의문사위는 2004년 7월 “특조단이 타살 가능성을 직접 뒷받침하는 진술과 자료를 고의로 누락했다”고 밝히고, 자료를 입수하러 간 의문사위 조사관에게 군 수사관이 총을 쏘며 협박했다고 주장해 국방부와 충돌하기도 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씨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마당에 재판에 이겼다고 축하받거나 소감을 말할 심경은 아니다”라며 “억울한 죽음들이 사실대로 밝혀지도록 국가가 좀더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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