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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혐의’ 일본기자 36년만에 무죄
민가협01-28 11:10 | HIT : 3,102
‘간첩 혐의’ 일본기자 36년만에 무죄


일본인 친구들은 “앞으로 한국 제품 안 사겠다, 한국 얘기 꺼내지도 말라”고 했다. 일본 기자가 한국 대학생에게 ‘북한의 공작금’을 전달하고, ‘북한에서 무기가 들어올 것’이라거나 ‘북한 방송을 청취해야 한다’며 선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1974년 당시 일본에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일간 현대>(닛칸 겐다이) 기자 다치가와 마사키(65)의 불행은 공안기관에 쫓기는 한 대학생에게 7500원을 건넨 데서 비롯됐다.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대학생들을 취재하러 온 마사키는 1974년 4월 여관방에서 얼마 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게 되는 서울대생 유인태(전 국회의원)씨를 인터뷰했다. “너무 힘들다. 라면만 먹고 산다”고 말하는 유씨에게 마사키는 “불고기라도 사 먹으라”며 7500원을 건넸다. 이 돈은 나중 수사 과정에서 북한의 공작금으로 둔갑했고, 마사키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외국인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게 됐다. 이국땅 군사법정 방청석에 앉은 아버지와 아내를 그는 차마 똑바로 보지 못했다.

마사키는 10개월 만에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지만, 주변은 황폐해져갔다. 아내는 충격으로 정신병을 얻었고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아버지는 세상을 뜨기 직전에도 “억울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세 살배기 아들은 물에 빠져 숨졌다.

36년여가 흐른 2010년 1월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이규진)는 재심 법정에 선 마사키에게 내란선동과 반공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 면소를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일본에 돌아가려면 혐의를 시인해야 하며 재판은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는 검찰의 회유를 받아 자백하는 듯한 진술을 했다는 변명이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방청석에선 <아사히신문>, <도쿄신문>, <교도통신>, <티비에스>(TBS)의 일본 기자들이 선배 언론인의 누명이 풀리는 것을 지켜봤다.

“한국이 용서가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36년간 나쁜 기억도 있었지만, 한국인들의 민주화에 대한 신념은 깊이 존경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은 좋은 나라입니다. 나쁘게 말하지 마십시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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