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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강좌] 제11회 주한미군 기지의 역사적 배경과 문제 그리고 반환운동 / 김용한(우리땅미군기지되찾기공대위)
민가협04-18 19:31 | HIT : 4,083
"주한미군 기지의 역사적 배경과 문제 그리고 반환운동"


때 : 2001.4.25.
곳 : 프란치스꼬 교육회관
강사 : 김용한



이 땅의 주인은 미군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제가 사는 곳은 경기도 평택인데요, 거기엔 미군기지가 굉장히 큰 게 두 개나 있어요.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다시 평택으로 온 게 88년이었습니다.
평택고등학교를 다닐 때였어요. 미군 기지 근처에 사는 친구가 자기 동네에 <십계>라는 영화가 들어왔다고 해서 보러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눈이 뒤집힌 일을 보게 되었는데 핫팬티에, 가슴은 다 드러나고, 등에 끈도 없는 그런 옷을 입고 미군들하고 어깨동무하고 지나가는 여성들이 길바닥에 즐비하게 있는 거예요. 고등학교 3학년 나이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지요. 그리고는 잊어 버렸는데 90년, 박사 논문 쓰려고 준비하던 3월 28일날 “용산 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된다”는 기사가 났어요. 그 기사를 보고 첫 번째 떠오른 게 그 때 그 광경이었어요

평택에 미군기지가 또 오면 평택은 ‘미군 기지 바다’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역 이기주의’니 ‘님비 신드롬’이니 하는 그런 것에서 시작한 거지요. 지역운동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성명서를 내기로 하고 제가 성명서를 쓴 게 인연이 돼서 미군기지 반환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미군 기지 다니는 사람들이 평택에 너무 많은 겁니다. 일제때부터 일본군 기지에 노동하러 다닌 사람도 많고, 그 뒤로 미군 기지에 다니는 사람도 엄청 많더라구요. 평택에 제일 큰 기업이 쌍용자동찬데, 주한미군이라는 ‘회사’는 그 정도는 안 돼도 한라공조나 만도기계보다는 큰 셈이죠. 미군 기지가 없어지면 직장이 없어지는 거 아니냐며 막 협박 전화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부대 앞에서 술장사하시는 일부 분들도 있었구요. 하지만 그런 건 다 이겨냈어요. 근데, 1년 뒤에 국방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평택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하자 운동이 정말 힘들어지더군요. 빨갱이 소리까지 들으면서 버텼는데, 결국은 졌다는 거지요. 그런데 지역 신문에 생판 듣지도 못했던 동네의 사람들이 모여 이전 반대 데모를 했다는 기사가 났어요. 그래서 그 마을에 가보니까 어른들이 "이번에는 저 동네까지만 수용되니까 거기 가서 도와줘라" 그러며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옆 동네 주민 대표를 만났더니, "됐습니다. 저희끼리 싸우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도 또 찾아갔다가 쫓겨나고 이렇게 반복을 했습니다. 길바닥에 앉아 계신 할머니들을 만나 "이번에 또 땅을 빼앗기게 되셨다면서요?" 그러면 다 말씀해 주시는데 "이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계속 들어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만났던 한 분은 남편을 잃으셨대요. 박정희 때 미군 기지 때문에 세 번째 땅을 빼앗겨서. 결국 자기 논에 깃발 꽂힌 걸 보고, '이거 미군 기지 또 들어오는구나' 그러면서 집에 들어와 끙끙 앓아 누우신 지 3년을 앓다가 돌아가셨대요. 그렇게 남의 땅을 빼앗아 기지를 넓히고 그런 것이 기록으로 열세 번이예요. 이 분들이 논, 밭, 집 다 빼앗기면 돈도 없으니까 철조망 옆에 천막 치고 사셨대요. 미군 부대에서 준 천막이 유일한 보상이었대요. 두서너 집에 하나씩 줬다고도 해요. 그렇게 한두 해 겨울을 나면 추워서 도저히 살 수 없으니까 흙벽돌 짓고 수수깡으로 엮어서 흙 붙여서 집 짓고 살았지요. 그러다가 또 쫓겨나고. 다섯 번 땅을 뺏긴 분도 계시더군요.
미군 기지 때문에 땅을 빼앗길 때마다 보상은 거의 못 받았고, 70, 80년대에는 조금씩 받았는데 그게 공시지가로 받는 데다가 군사 보호 구역이니까 땅 값은 똥값이고 그거 받고 어디 이사 가면 땅도 못 사는 지경이었지요.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빨갱이’라는 제 누명이 벗겨졌어요. 알고 보니 8개월 전 미군기지 이전 소문 날 때 경찰들이 "평택시내 빨갱이들하고 싸우면 큰일난다. 서울에서 데모 선동하러 내려온 놈들이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분들하고 연대가 이루어지니까 지금의 매향리처럼 막 들어가서 함께 시위하고 싸우고 했지요. 미군이나 국방부나 평택 군청 관계자들이 오면 5분 대기조 동원해서 내쫓고, 쇠스랑 가지고 모여들고, 동네 길목에다 초소 지어 놓고, 어르신들이 장기 바둑 두다가 이상한 사람 지나가면 불러 세워놓고 야단 치고. 일년을 싸운 끝에 국방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평택 이전 유보를 발표했지요.(이 대목에선 박수 한번 쳐 주셔야지요.)
그런데 서울에서 ‘용산미군기지 이전’ 운동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랬지요. "우리도 다른 나라처럼 임대기간 정하고 임대료 좀 받자. 기간 연장해 주는 건 주인인 우리가 알아서 하고, 필요하다 싶으면 임대료도 올려 받고. 그러다 쓸 일 생기면 내 놔라 하면서 돌려 받자. 필리핀도, 오끼나와도 그렇더라" 이렇게 주장해서 '미군기지 반환 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반환’은 제가 만든 말이 아니고 소파(SOFA)에 있어요. 미군에게 기지를 공여했다가(공여란 제공해 준다는 것인데), 어떻게 반환 받느냐? 이런 것을 규정해 놓은 조항을 보고 기지 반환을 주장한 겁니다.

외국 사람들은 국가보안법 살아있고, 분단돼 있고, 6·25전쟁도 겪은 한국에서 어떻게 미군 기지 반환 운동을 벌이는지 신기해합니다. 물론 한국인들도 의아해 하죠. "배은망덕한 놈, 미군이 얼마나 고마운데." 그런 분들에게 들려주는 말이 있어요. 제가 만든 말인데 소방수 이야기라고 해요. 우리 집에 불났을 때 소방수가 불을 꺼 줬습니다. 얼마나 고마워요. 근데 그 소방수가 언제 또 불날지 모르니 계속 지켜 주겠대요. 더 고맙지요. 그래서 초소도 만들어 주고 밤참도 갖다주면서 잘 지켜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물건을 훔쳐가는 거예요. 정말 너무 고마운 분이 도둑질을 할 수 있냐니까, 불 안 꺼줬으면 다 타 없어졌을 물건이라는 거예요. 맞는 말 같아서 몇 번 넘어 갔는데, 나중엔 아내와 딸들을 겁탈하는 거예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죠. 법정에 세워야 하잖아요? 그죠? 그런데 그는 똑같은 말을 하는 거예요. "내가 안 구해 줬으면 다 타 죽었을 여자들인데 뭐 그걸 가지고 그러느냐, 배은망덕하게!" 이 얘기를 미군이 똑 같이 하고 있거든요. 역대 우리 정부는 "맞아, 어차피 타 죽었을 여자들이니까 마음대로 해! 이랬구요. 최소한 50년 만에 들어선 이 정부는 그러지 않기를 바래요. 미군이 우리나라 사람 겁탈하고 도둑질하고 범죄 저지르면 막 야단 치야 합니다. 정부가 국민 대표해서 감옥에 가두고, 큰 소리 치면서 자꾸 이러면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해서 나가게 만들겠다. 이렇게 겁도 주면서 주인 노릇을 해야죠.

그런데 어쨌든 소파를 일부나마 개정했어요. 일부는 개악되고 일부는 개정되고 상당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그냥 넘어갔고요. 좀 나아진 부분은 환경이란 단어가 들어갔다는 건데 내용은 거의 똑 같아요. 원상복구 의무가 없거든요. 1년에 한번씩 꼭 필요한 기지인지 아닌지 검토해서 우리 쪽에 반환하겠다는 내용도 있고요.

개악된 부분은 미군 가족이 취업 비자 없이 그냥 취직할 수 있게 한 부분, 미군 피의자에 대해 기소 뒤에는 심문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 '공여지 침해 방지 조항' 같은 건데, 이게 뭐냐 하면, 지금까지는 땅임자들이 "내 땅이니까 너희들 비켜라." 이렇게 할 수가 있었죠. 그런데 이제는 미군이 "공여지 침해를 방지하라"면서 조항을 들이대면 한국 정부는 당장 땅 임자를 몰아내야 하지요. 엊그제 개정한 걸 다시 개정하는 게 힘들겠지만, 다시 한번 개정해야 합니다. 이 정권 가기 전에 정말 다시 한번 개정해야 합니다.

끝으로 매향리 폭격장이 록히드 마틴이라는 무기 회사 폭격장이라는 얘기만 더 하겠습니다.
작년 7월 16일 제가 매향리에서 연행되면서 전경 버스에 실려 매향리 폭격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 우연히 팻말을 봤어요. 그 팻말에는 석 줄이 써 있었는데, 맨 윗줄에는 Welcome To Koon-ni(쿠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음 줄엔 Lockheed Martin(록히드 마틴), 마지막 줄엔 Pad Elevation 34 Feet(해발 34피트) 이렇게 써 있었어요.
록히드 마틴은 미국 군수 회사 이름이지요. 무기 만드는 회사 이름인데요. 그 록히드 마틴사가 매향리 폭격장의 주인입니다. '어서 오세요. 주인 백' 이거지요.

우리는 '미공군 국제폭격장' 그러잖아요. 매향리 미공군 국제 폭격장, 그러면 주한 미공군이나 미국 본토에 있는 미공군이 관리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무기 회사가 관리하는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감옥에서 록히드 마틴 자료를 구해 읽었어요.
70년대에 일본에서 다나까가 수상을 할 때 미국 대통령은 닉슨이거든요. 둘이 하와이에서 정상 회담을 하면서 닉슨이 "록히드 거 사"라고 하고, 다나까가 록히드 거를 샀지요. 그 댓가로 록히드가 다나까 수상한테 5억 엔의 뇌물을 줬어요. 이게 미 상원 청문회에서 밝혀졌고, 뒤늦게 일본 언론이 들고일어났지요. 결국 다나까가 수상에서 물러나고 구속까지 됐지요. 이게 록히드 스캔들이예요. 일본은 '평화 헌법'이 있어서 그 당시에는 군대도 못 두고 전쟁도 못하게 되어 있었죠? 지금은 헌번도 고친다고 하지만, 그 땐 그런 엄두도 못 냈죠. 그런 일본에도 무기 팔아먹으려고 5억 엔씩이나 바치는데 한국 대통령들 얼마나 받아먹었을까? 그 당시는 박정희였지요.

그런데 매향리 폭격장을 처음엔 미공군이 관리했겠지요. 우리 정부가 허락했으니까. 근데, 미군들이 볼 때 남북 관계에 따라 폭격 훈련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겠지요. 그런데, 록히드 마틴 같은 무기 회사가 보면 한국 같은 나라가 없지요. 아무데나 폭격해도, 주민들이 데모하면 정부가 몇 놈 갖다 가둬버리고, 땅값 내놓으라는 놈이 있나? 보상하라는 놈이 있나? 미군 살기는 천국 같은 나라,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폭격장은 없지요. 오끼나와 미군이 와서 폭격을 하건, 괌 미군이 와서 폭격을 하건, 국민은 물론 현지 주민들도 꼼짝 못하잖아요. 무기회사는 여기저기 로비해서 무기를 팔아 놨는데 써먹을 폭격장이 없다든가, 주민 데모로 폭격을 못해 재고가 쌓이든가 하면 문제가 생기니까 폭격장을 직접 관리하면서, 신무기도 만들어 실험해 보고 재고 무기도 다 터뜨려 보고 얼마나 좋겠어요? 제가 법정에서 이렇게 주장했는데 나중에 주한미군이 그걸 인정했더군요. '록히드 마틴한테 관리 운영권이 넘어가 있는 건 맞다. 그러나 신무기 실험이나 재고 무기 써먹는 곳은 아니다'. 저는 인정할 수 없어요. 증거 내 놔라 이거죠. 신무기 실험 안! 했다는 증거. 그러면 나보고 했다는 증거 내 놔라 그러겠죠. 그래서 미국 평화 운동가들한테 부탁을 했어요. 여기서 실험했던 무기가 뭔지, 계약서 내용은 어떤지, 이런 걸 찾아봐 달라고요. 오래 걸리더라도 그런 자료는 뽑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매향리 미공군 국제폭격장은 무기회사 돈 벌어 주기 위해서 매향리 주민들 다 죽이는 폭격장입니다. 그런 회사들 무기를 사 들이는데 우리나라 국방비를 다 쓰고 있고, 지금도 10조원 넘게 무기 살 예산을 잡아 놓고 있잖아요? 이런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올해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싸워 나가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질문> 미군기지가 우리나라에 몇 개 정도 주둔하고 있는가 알고 싶어요.

제가 처음 이 운동을 시작 할 때는 120개 정도 됐는데요. 지금은 93개로 많이 줄어들었어요. 면적도 십 년쯤 전엔 일억 이천만 평 정도였는데, 지금은 칠천 사백만 평으로 줄어들었구요. 그런데 지난 3월에 토마스 슈워츠 미군사령관이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앞으로 십 년 안에 한국의 중요한 미군기지 46개를 25개로 줄이겠다' 했어요. 중요한 기지 21개를 내 놓겠다는 거지요. 그러면 93개가 72개로 줄게 되는 거지요.

<질문> 처음에 미군기지가 들어오게 된 이유와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기지가 남아있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맨 처음 미군기지가 들어온 것은 용산 기지가 대표적인데요. 그게 일본군 기지였어요. 그런데 일제시대 때 미군이 들어와 일본 군대한테 인수인계 받을 동안 일본 군대와 미국 군대가 같이 있었어요. 인수인계가 끝나고 미군들이 자기들이 활용하기 좋게 개발을 했지요. 건물도 짓고 도로도 닦고 말이죠.
짐 콜스 라는 전 주한미군 사령부 대변인이 한 월간지 기자하고 인터뷰한 게 있어요. 비공식적 자리였는데 그 기자가 "지금 한국 사람들이 미군 기지를 반환하라고 요구하는데 용산 미군 기지를 반환할 생각이 있느냐?" 이렇게 물으니까, "용산 미군기지는 일본군 기지를 우리가 접수해서 우리가 도로도 깔고 우리가 개발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때 하나도 도와 준 게 없다. 그러므로 이거는 미국 땅이다." 그렇게 얘기를 했답니다. 이건 너무나 명백히 말이 안 되는 게, 불평등한 소파로도 사용권은 주지만 소유권은 안 주거든요. 그래서 미군들은 소유권이 없습니다. 아무튼 미군들 시각은 그렇습니다.
미군 기지는 일본군 기지를 접수한 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6.25때 이승만이 '미군이 원하는 곳 아무데나 천막 치고, 철조망 치면 그게 미군 기지다. 아무 데나 쳐라'고 인정해줬고, 그래서 그 때는 몇십 억 평의 미군 기지가 있었는지 근거 자료조차 없습니다. 43억 평인가 하는 자료가 한번 나오긴 했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많은 미군 기지가 있었는데 나중에 6.25 끝나고 미군들이 삼십만 명에서 삼만칠천 명으로 줄고, 기지가 한국정부에 반환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군 공여지 문제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동두천에서 어떤 땅 임자가 있어요. 철조망도 없고, 일제 때 일본군 기지도 아니었고, 조상 대대로 쓰던 땅이고 밭이예요. 자기 밭에 농가 주택을 지으려고 봄에 나가 보니까 겨우내 어떤 일이 벌어졌냐 하면, 자기 밭에 못 쓰는 미군 탱크가 여덟 댄가 즐비하게 서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웬 거냐" 하고 미군들한테 항의했더니 "넌 뭐냐" 그러더래요. "난 땅, 밭 임자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 너희 정부가 우리한테 사용하라고 줬다." 그러더라죠? "내가 작년에도 농사를 지은 땅인데, 너희가 언제 여기 사용한 적이 있냐" 그러니까 "증거 서류를 봐라" 그래서 막 뒤져 본 거지요, 뒤늦게. 보니까 자기 땅을 미군이 사용할 수 있게 한국 정부가, 밭 임자한테 얘기도 안하고, 그냥 건네 줬더래요.
이런 땅이 동두천시 전체 면적의 52%나 됐어요. 반 이상이 미군 공여지인데, 땅 임자도 몰라요. 그게 왜 가능 하냐면, 이런 거예요. 6.25때 미군들이 와서 아무 데나 천막 치고 있던 땅을 1967년에 공식으로 공여지로 인정해 준 거지요. 미군들이 떠난 뒤 기지로 사용하던 곳이 어딘지를 모르는 거예요. 미군들도 잘 몰라요. 서류를 안 보면. 어떤 부대가 어디서 진치고 살았는지를. 그냥 떠났으니까. 그러다 보니 땅임자도 모르는 채 사용권이 미군한테 넘어가 있는 땅이 한 시 면적의 반을 넘는 일이 벌어지지요.
우리가 국방부에 공여지 실태를 공개하라고 한 적이 있는데, 땅임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면 그 땅임자들한테는 그 사람 땅이 공여지인지 아닌지 알려 줄 수 있지만, 땅임자가 아닌 사람들한테는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공개할 수가 없대요. 참, 어처구니가 없죠. 결국은 온 국민이 국방부에 질의해 봐야 할 판이예요. 실태를 알려면... 이건 나라가 아니라고 봐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나라가 나란가요?

<질문> 앞으로 운동은 어떻게 해 나가실 건가요?

사람들이 소파 개정하라 그러면 답답해해요. 소파를 없애 버리면 되지 하거든요. 그런데 소파가 없어지면 66년 이전으로 돌아가요. 소파가 67년에 생겼으니까. 그렇게 되면 모든 미군 범죄를 우리가 하나도 못 다뤄요. 불평등한 거나마 있으니까 다룰 수 있는 거지, 66년까지는 통계도 없어요. 그러니까 소파는 아무리 답답해도 개정하자고 주장하는 게 맞고요.
소파의 모법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인데, 그거는 파기하자고 할 수가 있지요. 그게 유효기간이 무기한이거든요. 그러니까 대통령이 통일 후에도 주둔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미군은 원래가 무기한으로 주둔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상호방위조약 파기하자'는 말은 미군 주둔의 법적 근거를 파기하자는 거니까 미군 철수하라는 말과 같죠. 근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파기를 통고하더라도 당장 파기되는 게 아니라, 일년 뒤에 파기되게 돼 있어요.
문제는 개정을 할 수가 없다는 거죠. 소파는 두 번 고쳤잖아요. 근데 상호방위조약은 고칠 수가 없어요. 미군을 영구 주둔시키든가, 아니면 조약을 파기하자고 하든가 둘 중에 하나죠. 억지로 고치는 방법은 있을 거예요. 일단 파기하자고 하면, 실제로 파기될 때까지 1년이 걸리니까, 그 동안 새 조약을 만들면 현 조약을 개정하는 것과 같겠죠. 근데, 혁명 정부가 아니라면 그 어떤 정부가 미국한테 "상호방위조약을 파기하자"고 할 수 있겠어요? 아무 것도 아닌 소파도 "고치자"고 나서지 못하는 판에.. 우리는 이 조약 개정이나 파기 운동을 벌일 생각이예요.

<질문> 그 조약 자체를 없애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요?

한미상호방위조약 자체를 없애면 미군이 일년 뒤에 떠나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파기 아니면 영구 주둔이예요. 저는 5년이나 10년 단위로 계약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어요.
필리핀은 처음에 기간을 99년으로 했다가 19년만에, 앞으로 남은 80년은 너무 기니까 25년만 하자고 해서 19년만인 66년에 25년으로 정하고 91년에 끝났거든요. 이게 필리핀 사례인데, 저는 우리도 기지를 계약 형태로 하고, 그 기간은 5년이나 10년 정도로 했으면 좋겠다는 거지요. 그래서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이나 폐기 운동을 하겠다. 이렇게 선언한 거구요.
그리고 소파는 미군이 주둔하는 한 완전히 평등하게 개정하는 운동을 계속해야지요. 또 미군기지 주변 주민들과 함께 소송단을 꾸려서 3년에 한번씩 소송하는 운동도 할 생각입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더라도 남북이 화해와 통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아무 쓸데 없는 무기나 10억 원어치가 훨씬 넘게 사려고 하고 있어요. 이건 막아야죠. NMD니, TMD니 하는 미사일 방어 체제도 북한 같은 나라를 핑게대며 미국 무기 회사들 살리려는 계획이거든요. 그것도 막아야죠. 불평등한 소파에도 주한미군 주둔비를 우리 정부는 안 내게 돼 있어요. 근데 특별 협정을 맺어서 해마다 점점 더 많은 미군 주둔비를 우리 국민 혈세로 내야 해요. 이 특별협정의 유효 기간이 올 12월 31일에 끝나거든요? 그러니 당연히 이 소파 특별 협정의 내용을 고치거나 유효 기간을 연장하거나 하지 못하도록 싸우기도 할 생각입니다.

<질문> 끝으로 정부나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짧게 해 주시죠?

결론은 하나예요. 주인은 우리라는 거.
미군은 힘이 아무리 세도, 주인이 아니라 그저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죠. 그렇담 정부는 미국 눈치가 아니라, 국민 눈치를 봐야죠. 국민은 노예 근성을 버리고, 주인 의식을 찾아야 하고요.
그리고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법위에 잠자는 자의 권리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하는 말이 있지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정반대죠. 솔직히 자기에게 유리한 법이 뭔지도 모르고, 자기 권리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권리를 누가 찾아 줄까요? 국갑니다. 돈 많고 많이 배우고 제 권리 잘 찾아 먹는 사람들은 국가가 보호해 주지 않아도 자기가 충분히 자기 권리를 찾아 먹어요. 그러나 보통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사는 시골 분들은 국가가 권리를 보호해 주지 않으면 "똑똑하다는 사람들한테 진작에 맞아 죽었을 사람들"이죠. 국가는 그런 분들한테도, 아니, 그런 분들한테서는 특히 더 세금을 꼬박꼬박 거두어 가지 않나요?
이 땅의 주인은 미군이 아니라 우리 민족입니다.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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